1960년대 초반, 미국 대비 1인당 소득이 10%에 불과했던 한국은 1980년에 20%로, 상위 중진국 수준에 도달하며 빠르게 경제 발전을 이루어냈다. 민주화 투쟁의 혼란 속에서도 1990년대 초반 선진국 기준인 40%를 넘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면서, 한국은 중진국 함정을 벗어났다. 그 당시 한국 경제는 높은 성장률과 분배 개선이라는 ‘동아시아의 기적’을 만들어 내며 추격형 동아시아 자본주의의 전형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와 함께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 금융을 받으면서 영미식 자본주의의 제도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한국 기업들의 수익성은 개선되었지만, 영미식 자본주의 특유의 배당 요구로 인해 총투자율이 감소하면서 저성장 기조가 시작되었다. 동시에 분배의 악화와 양극화가 심화되었으며, 이로 인해 한국은 저성장과 나쁜 분배가 특징인 영미식 자본주의로 수렴해가는 모습을 보이게 됐다.
영미식 자본주의로의 수렴?
현재 한국의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자본주의의 유형을 비교할 필요가 있다. 크게 네 가지 자본주의 유형이 있다. 첫째, 저성장·나쁜 분배·높은 고용률의 영미식 자유방임 자본주의. 둘째, 고성장·좋은 분배·높은 고용률의 북구식 시장조정형 자본주의. 셋째, 중성장·중분배·낮은 고용률의 유럽대륙식 혼합자본주의. 마지막으로 고성장·좋은 분배·높은 고용률을 창출한 동아시아 자본주의다.
필자의 통계 분석에 따르면, 한국은 일본과 함께 저성장과 나쁜 분배로 영미식 자본주의와 같은 클러스터에 속하게 되었다. 반면 대만은 북유럽 국가들과 함께 고성장·좋은 분배·높은 고용률을 유지하는 북구식 자본주의로 묶였다. 한국이 영미식 자본주의로 수렴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국의 자본주의는 재벌형 기업 지배구조와 경직된 노동시장 등으로 인해 완전히 영미식 자본주의와는 다른 면모를 보인다.
또한 읽어보세요: 5G 네트워크 시장: 도달 범위와 연결성 확대
사회지표에서 드러나는 한국 자본주의의 특징
한국의 1인당 소득 수준은 현재 미국 대비 약 70%에 이르며,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서구 선진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사회적 지표에서는 기대수명 83년, 낮은 범죄율, 낮은 이혼율 등 긍정적인 지표를 보여준다. 이로 인해 한국은 일본, 이탈리아, 스페인과 함께 ‘안전한 자본주의’로 분류된다. 하지만 동시에 최장 노동시간(1900시간), 세계 최고 자살률(28명), 그리고 남녀 간의 임금 격차(30%) 등 극단적인 문제도 존재한다.
노동시장의 성과를 살펴보면, 한국은 영미식 자본주의보다는 유럽대륙식 자본주의에 더 가깝다. 미국의 해고 용이성 지표가 0.1인 반면, 한국은 2.4로 유럽 대륙 국가들과 유사하다. 또한, 노동자 교육훈련과 고용 인센티브 등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에 대한 지출 비율은 0.4%로 북구 국가들보다는 낮지만, 미국보다는 높다. 이는 한국이 유연성과 안정성을 모두 추구하는 노동시장을 지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치제도와 민주주의의 발전
한국의 정치제도는 영미식 자본주의와 다소 차이를 보인다. 민주주의 지수에서 한국은 8.3점을 기록하며, 미국(7.9점)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다. 여성 대통령의 선출과 평화적인 정권교체, 탄핵 절차를 통해 한국은 안정적인 민주주의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부패 지수에서는 북구 국가들보다는 낮고, 미국, 영국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한국이 ‘청렴하지 않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자본주의의 향후 방향
한국은 외환위기 이후 저성장과 분배 악화로 영미식 자본주의로 수렴하고 있지만, 이를 일관된 수렴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지표마다 다른 유형의 서구 자본주의와 유사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동아시아 자본주의에서 출발해, 서구 자본주의와는 다른 새로운 자본주의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한국이 더욱 역동적이고 행복한 자본주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각 자본주의 유형의 장점을 취하는 방향이 필요하다. 현재의 높은 기대수명과 낮은 범죄율을 유지하면서도 노동시장을 유연하고 안정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특히 여성 고용률을 높이고, 직업훈련과 재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저출산과 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한 중·단기 대책으로, 인공지능(AI)과 같은 혁신 기술을 통해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결국 한국은 동아시아 자본주의의 기적을 이루어냈지만, 외환위기 이후 영미식 자본주의의 영향을 받아 저성장과 분배 악화의 길로 들어섰다. 하지만 아직 영미식 자본주의로 완전히 수렴한 것은 아니며, 한국은 새로운 자본주의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보다 행복하고 역동적인 자본주의를 위해서는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과 기술 혁신이 필요하다. 한국은 이러한 변화를 통해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More Stories
중소벤처기업부, 인도 청년층 채용 지원으로 국내 중소기업 활력 제고
“국민의힘 내 특별감찰관 임명 논란: 배현진 의원의 불만과 한동훈 대표의 임명 추진”
DSR 규제 피한 가계대출, 118조 원…전체 대출의 60% 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