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1월 2025

법원, ‘이태원 참사’ 경찰 책임 인정… 용산구청은 무죄

법원, '이태원 참사' 경찰 책임 인정… 용산구청은 무죄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이 30일 서울서부지법을 나서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서울 – 10·29 이태원 참사에 대한 첫 판결에서 1심 재판부는 참사의 예견 가능성과 그에 따른 국가 기관들의 주의 의무에 대해 경찰과 용산구청의 책임을 엇갈리게 판결했다. 서울서부지방법원은 30일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등 경찰 관계자들에게 실형을 선고하면서, 참사 당시 이들이 주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반면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 구청 관계자에 대해서는 재난안전법령상 자치단체의 의무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경찰의 주의 의무 위반

재판부는 이임재 전 서장을 비롯한 경찰 관계자들이 이태원 참사 당시 군중 밀집 상황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대처를 하지 않았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태원의 좁고 경사진 골목길에 대규모 인파가 몰리며 보행자들이 한 방향으로 쏠릴 가능성을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경찰은 경비 대책을 수립하지 않았다”며 경찰의 직무집행법 위반을 지적했다.

특히 재판부는 경찰이 참사 당일 △효과적인 경비 계획 수립을 하지 않았고 △정보 기능을 현장에서 배제했으며 △범죄 단속에만 치중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참사가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에 대비하지 못했고, 참사 임박 시점에도 이 전 서장이 무전기를 제대로 듣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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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판결은 참사의 예견 가능성에 대한 국가 기관의 직접적인 책임을 물은 첫 사례로, 경찰의 대응 미흡이 참사의 주요 원인으로 인정된 것이다.

용산구청은 무죄, 법적 의무 부족 인정

반면, 박희영 용산구청장과 구청 관계자들에 대해서는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자치단체가 주최자 없는 다중운집 행사에서 사고 예방 의무를 법적으로 부담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구청에는 “군중을 분산시키거나 해산할 권한이 부여된 규정이 없다”며, 경찰 협조 요청 등의 의무도 없었다고 밝혔다.

박희영 구청장이 법원을 떠나는 모습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유족들은 법원 결정에 즉각 반발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는 선고 직후 입장문을 통해 “용산구청이 경찰에 혼잡 경비를 요청하거나 구청 공무원들이 인파 통제에 나섰다면 대규모 참사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법원의 판단이 “형식적인 법 논리에 매몰되어 피고인들의 무능을 무죄의 근거로 삼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대통령실 용산 이전’이 참사에 미친 영향 일부 인정

이번 판결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대통령실 용산 이전’이 이태원 참사에 미친 영향을 재판부가 일부 인정했다는 점이다. 재판부는 참사 당일 용산경찰서가 대규모 집회와 시위 대비에 집중해야 했기 때문에 핼러윈 축제 현장의 경비와 질서 유지에 충분한 인력을 배치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대통령실이 용산으로 이전함에 따라 용산서가 집회 대응에 집중해야 했던 연쇄적인 결과로, 핼러윈데이 안전 관리에 공백이 생겼음을 간접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이임재 전 서장 등 경찰 관계자들은 재판 과정에서 대통령실 이전으로 인해 용산경찰서의 경력이 부족했다고 주장했으며, 이번 판결은 그 주장의 일부분을 받아들인 셈이다.

유족들의 절망과 분노

법원의 판결이 내려지자, 법정에 있던 유족들은 크게 반발했다. 특히 박희영 구청장이 무죄를 선고받는 순간, 법정 곳곳에서 유족들이 오열하는 장면이 목격됐다.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고 이주영 씨 아버지)은 선고 직후 “무죄가 말이 되느냐”며 분노를 표출했고, 다른 유족들도 눈물을 참지 못했다.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슬픔에 잠긴 한 유족은 “아직 끝난 게 아니다”라며 서로를 위로했다.

유가족들은 참사 2주기를 앞두고 ‘기억과 애도의 달’을 선포한 상황에서, 이번 판결이 피해자들의 명예와 기억을 지키려는 노력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 되었다. 유가족협의회는 판결에 대해 항소할 뜻을 밝히며, “국가 기관의 명백한 과실을 법원이 일부 인정한 것은 의미가 있으나, 구청의 무책임한 대응에 면죄부를 준 것은 실망스럽다”고 밝혔다.